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 주요국들은 '탄소중립(Net Zero)' 목표를 속속 선언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이란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배출량은 흡수량으로 상쇄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각국의 의욕적인 선언과 실제 이행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주요국의 탄소중립 정책과 실제 진전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유럽연합(EU): 선도적 정책, 불균등한 이행
정책 프레임워크
EU는 2019년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통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으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겠다는 중간목표도 제시했습니다.
주요 정책 수단
-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2023년부터 단계적 도입,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 수입 시 탄소세 부과
- 배출권거래제(EU ETS):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탄소 시장 운영
- 화석연료 자동차 판매 금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 금지
- 재생에너지 확대: 2030년까지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42.5% 달성 목표
현실적 진전과 과제
EU는 이미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이상 감축했으나, 회원국 간 진전 수준은 불균등합니다. 폴란드 등 석탄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전환 속도가 더딘 반면,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목표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 우려로 일부 국가들이 석탄발전을 일시적으로 늘리는 등 단기적 후퇴도 관찰됩니다.
중국: 세계 최대 배출국의 과감한 선언과 실용적 접근

정책 프레임워크
중국은 2020년 '206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으며, 2030년 이전에 탄소 배출량 정점을 찍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요 정책 수단
- 재생에너지 대규모 투자: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풍력 설비 확장
- 국가 탄소배출권거래시장: 2021년 출범, 전력 부문부터 단계적 확대
- 전기차 보급 확대: 2035년까지 신규 자동차의 50% 이상을 신에너지차로 전환
- 산림 흡수원 확대: 2030년까지 산림 보유량 60억㎥ 달성 목표
현실적 진전과 과제
중국은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나, 여전히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이자 온실가스 배출국(전 세계 배출량의 약 27%)입니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장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며,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을 계속하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배출량이 증가할 전망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바탕으로 목표 달성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미국: 정치적 변동성 속 혁신 주도
정책 프레임워크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과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50-52% 감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주요 정책 수단
-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3,690억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투자 패키지
- 청정전력 계획: 2035년까지 100% 청정 전력 생산 목표
- 전기차 전환 가속화: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전환
- 메탄 배출 규제 강화: 석유·가스 부문의 메탄 배출 감시 및 규제
현실적 진전과 과제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이미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약 20% 감축했으나, 연방정부 차원의 일관된 정책 추진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행정부 교체에 따른 정책 변동성이 크며, 법원 판결로 환경 규제가 무력화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반면 캘리포니아 등 주 정부와 민간 기업의 자발적 탈탄소화 노력은 연방정부 정책과 무관하게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산업구조 전환의 도전 속 그린 뉴딜

정책 프레임워크
한국은 2020년 '2050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시했습니다.
주요 정책 수단
- 2050 탄소중립 기본법: 법적 구속력 있는 탄소중립 추진 체계 구축
-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 배출권거래제 강화: 유상할당 비율 확대 및 배출권 가격 상승 유도
- 재생에너지 확대: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30.2% 달성 목표
현실적 진전과 과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높은 에너지 집약도로 인해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에너지 위기로 정책 속도 조절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입지 확보의 어려움, 산업계의 경쟁력 약화 우려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반면 수소경제, 전기차 배터리 등 신성장 분야에서는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기술 혁신에 중점을 둔 접근
정책 프레임워크
일본은 2020년 '2050년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46% 감축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주요 정책 수단
- 녹색성장전략: 14개 핵심 산업 분야별 탈탄소화 로드맵
- 수소경제 구축: 2050년까지 2,000만 톤 규모의 수소 활용 목표
- 탄소가격제: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혼합 모델 검토
- 원자력 활용: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의 재가동 추진
현실적 진전과 과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의존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했으나, 점진적인 원전 재가동과 에너지 효율 향상 노력으로 배출량 감소세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암모니아 혼소발전, 수소 활용 등 혁신 기술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만, 일본의 지리적 특성상 대규모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약이 있어 다양한 기술 옵션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주요국 탄소중립 정책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적 접근법
- 부문별 탈탄소화 로드맵: 전력, 수송, 산업, 건물 등 부문별 감축 경로 설정
- 탄소가격제 도입: 배출권거래제 또는 탄소세 형태로 외부효과 내재화
- 청정에너지 투자 확대: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저장장치 등에 대규모 투자
- 전기차 전환 가속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 일정 제시
국가별 차별점
- 기술 경로의 다양성: EU와 미국은 재생에너지 중심, 일본은 수소와 원자력 포함, 중국은 모든 옵션 병행
- 정책 체계의 안정성: EU는 법적 구속력 있는 체계, 미국은 정권 교체에 취약
- 산업정책과의 연계: 각국이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와 연계한 차별화된 접근
- 국제 협력과 경쟁: 기후 외교와 무역 정책을 연계하는 정도의 차이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 해소를 위한 과제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 보장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산업과 노동자,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EU의 '공정전환기금', 미국 IRA의 지역 기반 지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혁신 기술 상용화 가속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그린수소, 차세대 배터리 등 핵심 기술의 상용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연구개발 및 실증 지원이 중요합니다.
국제 협력 강화
기후변화는 국경을 초월한 문제인 만큼, 선진국-개도국 간 재정 및 기술 지원, 국가 간 배출권 거래 등 협력 메커니즘 구축이 필요합니다.
민간 부문의 적극적 참여 유도
정부 정책만으로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운 만큼, 기업의 자발적 감축 노력과 금융기관의 녹색금융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마무리
탄소중립을 향한 글로벌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각국은 자국의 경제·사회적 여건과 에너지 구조를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만, 목표는 동일합니다 -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여 기후 위기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현재 정책과 실제 이행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지만, 기술 혁신, 규제 강화, 시장 기반 메커니즘, 국제 협력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간극을 좁혀나가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은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각국 정부의 공식 발표 자료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등의 보고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